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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깊이 알기

인터넷의 시작

인터넷은 원래 미국 정부의 자산이었습니다. 처음에는 ARPAnet이라고 불렸습니다. 지금은 DARPA라고 이름이 바뀌었으나 당시에는 ARPA라고 불리던 기관의 주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DARPA는 미국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의 연구자금 지원 기관인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의 약자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회사를 다니던 당시 프로젝트 건으로 DARPA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건물 1층에 한국인 교포 부부가 운영하던 델리 가게가 있던 것이 기억납니다. 저는 미국 국적이 아니어서 가슴에 패용하는 태그가 미국국적자와 달랐고, 건물 내부에서도 에스코트를 필요로 하는 등 이동에 제한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얼핏 들은 얘기는 DARPA의 예산 중 90%는 직접적인 군사기술 연구에 지원하고, 나머지 10%는 이른바 미래를 내다보는 연구 (forward-looking research)에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래 전 얘기라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2021년에 우리나라도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한국형 ARPA를 추진하기로 했고, 2023년 말 의학분야부터 시작해서 실제로 출범한 것 같습니다. 

 

ARPAnet이 시작된 배경은 당시 미·소 냉전이었습니다. 모두 핵전쟁의 공포 속에 살던 시대였고, 미 국방부는 소련의 핵 공격으로 주요 통신 거점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미군의 통신을 유지하기 위한 생존성이 강한 통신 기술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 때 강력한 후보로 떠오른 것이 바로 패킷 교환 (packet switching)이라는 신기술이었습니다. 메시지를 일정 수의 비트를 묶은 이른바 패킷이라는 단위로 잘라서 전송하되, 각 패킷은 각자도생하게끔 하는 것입니다. 패킷의 맨 앞부분인 헤더 (header; 헤드(head)가 아닙니다)에 그 패킷이 찾아가야 할 완전한 주소를 써 넣어서, 중간에 통신 노드가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 그 노드를 우회해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방식입니다. 참고로 당시의 주 통신망이라 할 수 있던 전화 네트워크는 회선 교환 (circuit switching)이라는 기술을 쓰고 있었는데, 한 도시가 핵 공격으로 증발하여 전화국이 사라지는 경우 패킷 교환만큼 복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비유컨대 1000명의 사람이 우리가 보내고자 하는 데이터라고 합시다. 이들을 여러 대의 자동차(패킷)에 나눠 태우고 출발해서 한 목적지로 줄지어 가다가 어떤 도시가 파괴되어 통과할 수 없게 되면 각각의 자동차들이 옆 도시로 우회해서 전진하는 것과 같은 것이 패킷 교환입니다. 심지어 자동차들 하나하나가 다 다른 길로 가도 됩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반면 회선 교환은 이 1000명을 함께 기차에 태우고 목적지를 향해 보내는 것과 비슷합니다. 기찻길이 중간에 파괴되면 기차는 멈춰서버리게 될 것입니다. 물론 기차도 뒤로 돌아갔다가 다시 다른 철로로 갈아타고 갈 수 있겠지만 훨씬 더 시간이 걸리고 복잡한 시스템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주 좋은 비유는 아니었지만 그 비슷한 원리로 패킷 교환 방식은 당시의 군사적 필요를 더 잘 충족하는 기술이었으므로 ARPAnet에 적용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도 인터넷은 이 패킷 교환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DARPAnet(처음 명칭은 ARPAnet)1969년에 시작되었으며, 1990년까지는 미국 국방부에서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아래 그림이 소박했던 첫 ARPAnet의 모습입니다 (1969년 12월). 스탠포드 대학의 SRI 연구소, 캘리포니아 주립대 산타바바라 (UCSB), UCLA, Utah 대학에 위치한 네 노드가 동그라미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대학들에 있는 패킷 교환기에 연결된 사각형은 컴퓨터들입니다. 예를 들어 UCSB 노드에 연결된 360은 아마도 IBM 360 메인프레임 컴퓨터일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ARPAnet은 점차로 노드 수를 더해 가면서 커져 갔습니다. 한편 미국 국립 과학 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 198년에 NSFnet이라는 국가 기간망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90DARPADARPAnet을 퇴역 시켰고 NSFnet이 새로운 기간망이 되었습니다. 1994NSF는 이 망을 대체하고 관리하기 위해 지역 전화회사들(베이비 벨; Baby Bells)과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1995NSF는 네트워크의 상업적 운영을 위해 백본을 베이비 벨에 완전히 넘겼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인터넷의 시작입니다.

 

1969년 12월 인터넷의 출발 당시 연결 토폴로지 [출처: SRI (https://www.sri.com/hoi/arpanet/)]

 

인터넷의 역사는 인터넷 상에도 자료가 많을 뿐 아니라, 당장 쓸모있는 지식도 아니고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혹 나중에 더 얘기가 필요할 것 같으면 그 때 다시 이 주제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